조선 후기의 경제와 사회
- 역사
- 2021. 7. 14.
수취체제
과전법에서 공법으로 조세제도가 개편된 이후 인조때 영정법의 시행으로 1결당 4-6두를 납부하게 되었다.
방납의 폐단으로 대동법을 시행하여 각 호마다 부과하였고, 1결당 쌀 12두 또는 동전이나 포로로 대체할 수 있었다. 공인이 등장함에 따라 관정에 물품을 조달하게 되어 상품 화폐가 발달하였다.
군역이 요역으로 바뀌면서 대립, 방군수포가 생겼고 영조때 균역법의 시행으로 1년에 1필만 납부하게되어 재정이 부족해지자 결작, 어염세, 선박세와 선무군관포를 시행하였다.
농업
받은 2년 3작을하였고 담배, 인삼과 면화 등 상품 작물을 주로 제배하였다. 직파법과 이앙법을 사용하던것이 모내기법이 도입되면서 이모작, 광작으로 발전하였다. 이앙법이 전국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수확량은 증가하고 노동력을 감소하였다. 수확량의 절반을 납세하는 타조법이 미리 정해놓은 소작료를 지불하는 도조법으로 바뀌었다. 농업관련 서적으로는 농사직설, 금양잡록, 농가집성과 색경이 출간되었다.
상업
시전상인과 보부상이 주를 이루었고, 정도때 금난전권이 폐지되었다. 전국적인 유통망이 확대되어 상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공인이 생기는 대동법이 시행되었다.
상업이 발달함에 따라 중개업과 숙박업도 발달하였으며 사상과 공인이 힘을 합하여 도고로 성장하였다.
이후 개시무역과 후시무역이 생겨났고 청나라 에서는 중강개시, 중강후시 등을 요구하였다.
화폐는 저화를 사용하다가 숙종에 이르러서는 상평통보를 사용하였다.
농민의 저항
세도정치의 시기가 지속되면서 상정의 문란과 탐관오리의 수탈이 잦아져 농민들의 불만이 커져갔다. 이에 홍경래의 난이 발상하게되는데, 홍경래와 우군칙을 필두로 광산 노동자와 농민들이 힘을 합하여 서북 지역민들과의 차별에 봉기하게되고 정주성을 점령하게된다.
유계춘을 중심으로 백낙신의 부정부패에 항의하며 진주성을 점령한것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임술농민봉기가 발생한다. 이에 암행어사와 안핵사를 파견하고 삼정이정청을 설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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