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 대원군 흥선 대원군은 삼국부를 부활시켜 군국 기무를 전담하게 하였다. 비변사를 혁파하고 의정부의 기능을 부활시켰으며, 대전회통을 편찬하여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 흥선 대원군은 왕실의 권위를 세우고자 경복궁을 중건하였다. 경복궁 중건을 위해 원잡전을 강제로 지수하였으며,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자 당백전을 주조하였다. 흥선 대원군은 전국의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모두 철폐하였으며 양반에게도 군포를 징수하는 호포제를 실시하였다. 확곡의 폐단을 바로잡고자 사창제를 실시하기도 하였다. 최익현은 고종의 친정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려 흥선 대원구의 하야를 이끌어 냈다. 1866년 프랑스의 선교사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된 병인박해가 일어났다. 병인박해가 구실이 되어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략한 병인양요가 일어났다...
조선 전기의 조직 의정부는 재상들의 합의로 운영되었고, 정책을 심의하고 결정하여 국정을 총괄하는 역할을 하였다. 의금부는 국왕의 직속 특별 사법 기구인데, 반역죄, 강상죄 등 중범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하였다. 승정원은 왕명의 출납을 맡은 왕의 비서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도승지를 비롯한 6명의 승지가 있었다. 조선시대의 언론 기능을 담당한 사헌부, 사간원과 홍문관을 합쳐서 3사라고 불렀다. 사헌부는 관리를 감찰하고 자격을 심사하는 기관이고 사간원은 정책에 대한 간쟁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조선시대의 대간은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리로 구성되었는데, 5품 이하의 관리를 임명하는 과정에서 서경권을 행하였다. 홍문관은 혹당이라고도 불렸으며, 왕에게 경서와 사서를 강론하는 경영을 주관하였다. 조선시대의 수도의 행정과..
수취체제 과전법에서 공법으로 조세제도가 개편된 이후 인조때 영정법의 시행으로 1결당 4-6두를 납부하게 되었다. 방납의 폐단으로 대동법을 시행하여 각 호마다 부과하였고, 1결당 쌀 12두 또는 동전이나 포로로 대체할 수 있었다. 공인이 등장함에 따라 관정에 물품을 조달하게 되어 상품 화폐가 발달하였다. 군역이 요역으로 바뀌면서 대립, 방군수포가 생겼고 영조때 균역법의 시행으로 1년에 1필만 납부하게되어 재정이 부족해지자 결작, 어염세, 선박세와 선무군관포를 시행하였다. 농업 받은 2년 3작을하였고 담배, 인삼과 면화 등 상품 작물을 주로 제배하였다. 직파법과 이앙법을 사용하던것이 모내기법이 도입되면서 이모작, 광작으로 발전하였다. 이앙법이 전국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수확량은 증가하고 노동력을 감소하였다. ..
토지 제도 15세기 공양왕 때 과전법 시행으로 전직과 현직의 조화를 이루었고 경기지방으로 한정하였다. 수신전과 휼양전을 통해 토지가 세습되어 토지가 부족하게 된다. 세조에 들어서는 직전법을 시행하여 현직에 종사하는 관리만 토지를 가지게 되고 이전 공양왕 때 시행하였던 수신전과 휼양전을 폐지하게 된다. 성종에 들어서는 관수관급제를 시행하게 되었는데, 관리가 조세를 과다하게 징수하면서 관청에서 직접 수취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16세기가 되어서는 직전법을 폐지하였으며, 수조권 지급제도가 소멸하고 녹봉만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조세 제도 공양왕 때 과전법으로 세율은 1/10로 책정되었고 1결당 최대 30두를 부과하였다. 세종에 들어서는 공법이라 하여 땅의 비옥도에 따라 전분육등법으로 과세하였고, 작물의 ..